결국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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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won Jeong

글을 쓴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발걸음을 떼고 점점 더 깊은 머릿속 숲으로 파고들어 탐구하고, 멋진 열매를 꺼내와 전시하고 나누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꽤 힘들게 길을 터놓았는데, 그동안 그 길을 가지 않다보니 먼지도 쌓였고, 길이 어디였는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원래 이렇게 멀었는지. 막막하다.

왜 글쓰는 게 그렇게 어려워졌을까? 처음에는 뭘 써야할지 몰랐다. 큰 환경의 변화로 나는 외국에 나가 문화도 언어도 직장도 완전히 달라진 곳에 갓난아기처럼 떨어져,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훨씬 넓어진 숲을 매일같이 탐험하며, 와 이런 것도 있네! 와 이런 것도 있어! 하고 매일 감탄하기 바빴다. 매일 새로운 씨앗을 심었고, 무언가를 수확해 사람들에게 공유하기에는 나에게 충분한 경험이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서는 나는 중국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쓰는 글을 읽는 독자들과 내가 너무 먼 환경에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쓰는 글이 좀 더 공감되고 이해될만한 곳에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블로그 자체를 로컬이 아닌 국제 플랫폼, 즉 워드프레스로 옮겨야 했고, 내가 써온 글과 앞으로 쓸 글을 중국어든 영어로 번역해야 했다. 너무 좋은 발상이었다. 반드시 내가 옮겨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낸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그 작업들을 하기에는 내 에너지가 한참 부족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른지는 이제 반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웹사이트 빌딩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글을 쓰고싶지 않았다. 써보려고 앉으면, 막막하고 한숨이 나왔다. 그 시기 즈음 아버지가 나의 블로그에 이웃 추가를 하게 되면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폭이 많이 줄었다. 내가 힘든 일은 쓸 수가 없고, 정법에 대한 글을 쓸 수가 없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날카로운 단어로 표현할 자신이 없어 늘 단어를 바꾸고 축소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자유롭게 내 생각을 쏟아내고 익명이라는 공간 아래 자유로울 수 있었던 처음과 달리, 말 하나 하나 바꾸고 계산하고 삼켜야 하는 그 과정이 이제는 짜증나고 의무처럼 느껴졌다. 나는 단어를 바꾸어선 안됐다. 내가 써야하는 글의 내용과 독자가 있었지만 그건 가까운 이들에게 응원받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 Comfort Zone을 벗어나 가까운 사람들이 돌아서고 더 큰 세계의 더 많은 새로운 사람들이 다가오기 까지의 그 과정을 견딜 자신이 없었나 보다.

새로운 플랫폼이 생기기 전 네이버 블로그에라도 어떻게든 기록해보려 하면, 계산하는 그 과정에서 힘이 다 빠졌다. 그래서 됐다. 말자. 하고 지저분하고 조각난 기록들을 내 워드 문서에 기록하는 것으로 그쳤다. 나중에 플랫폼이 생기면 그동안 남기지 못한 글들을 이 워드 문서를 다시 보고 추적해갈 수라도 있게.

또한 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예전과 비슷비슷한 질량의 글을 꾸준히 쓰는 것에 의의를 두기에는 , 나의 완벽주의와 욕심이 허락하지도 않았다. 도약이 있어야 할 때라는 막연한 느낌.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예전과는 다른 질량의 글을 생산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고, 예전보다 훨씬 넓어진 스펙트럼의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일 수록 시작하기에 저항감이 크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글을 써야해, 제대로…” 그 생각이 반년동안 나를 떠나지 않고 마음 한켠에 있었다. 때론 너무 무겁게, 때론 때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때론 죄책감으로도.

오늘 여기까지 쓴 것도 대단하네. 요즘은 시간이 좀 더 생겨서인지 워드프레스 웹사이트 빌딩 원데이 클래스도 들어봤다.워드프레스를 제대로 배우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 형식의 웹사이트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가 있다. 블로그를 떠나서 내가 배워놔야 할 기술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글로 쓸 수 있는 수많은 소재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멍때리며 딴생각을 하다가 정신 차려보면, 그동안의 경험을 산발적으로 망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에는 ‘그 경험들을 정리하면 글 제목이 뭐지? 카테고리는 어디지?’ 라는 식으로 생각이 흘러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중요한 일이니 오랜 시간의 숨고르기가 필요했을 수 있지. 그럼에도 스스로 재촉하고 싶지 않다. 내가 게을러서 일까봐, 그냥 이렇게 놓아버리는 것일까봐, 내 근기가 딱 이년 짜리여서 일까봐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언젠가 때가 되면 제가 원해서, 재미있어서 쓸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고,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연과 소통하는 힘이 매우 강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는 때가 오겠지. 더 이상 안쓰고는 외로워서 못배길 것 같은 때가 오거나, 혹은 어느 날 그냥 한번 써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백일을 내리 쓰게 되거나, 혹은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보내주는 응원으로 다시 힘을 받게 된다거나. 어떻게 그 때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한번의 성공적인 서비스에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2022.02.28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