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리어로 일하면서 매일 같이 해야 하지만 가장 지루한 절차는 룸 인스펙션이었다. 손님 체크인 일정이 정해지면 사전에 룸의 전반적인 컨디션을 점검하는 작업이다. 매일 같이 체크인이 있는 만큼, 이 작업은 매일 해야만 하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이기도 하다.
1. 주방 커틀러리(식기류)의 종류와 수량이 정확히 맞춰져 있는지
2. 전등의 밝기는 적당한지
3. 전자 기기는 모두 정상 작동하는지
4. 손 닿지 않는 가구 안도 깔끔한지
5. 미니바가 요청에 맞게 채워져 있는지
6. 과일과 꽃은 신선한지
7. 먼지, 손자국, 지문 없이 깔끔한지
특히 점검하는 룸이 빌라라면 넓은 복층 빌라의 설비를 돌면서 일일히 확인해야 하는데 가끔은 스스로 점검하는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과는 대부분이 정상적이고, 문제가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만에 하나라도 있을 그런 상황을 위해서 그래도 이 지루한 작업을 반복 또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손님을 직접적으로 대하는 시간이 아닌 룸 점검하는 시간은 시간이 아깝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다 정상이겠지 짐작하고 그 시간에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지루한 이 시간이 나에게는 마치 스님이 마당을 쓰는 수행의 시간처럼 느껴져, 내가 싫어하는 지루한 일이더라도 마음을 담아 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너무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이 빨리 빨리 점검하고 넘어가지만, 그 지나친 환경에 내게 필요한 어떤 질량이 담겨 있었을지, 지나고 보면 늘 마음에 걸리곤 했으니까.
사회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일의 경중이 없고, 내 앞에 오는 일은 전부 내게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똑같은 컵을 만들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사람이 있고, 컵을 쓸 사람을 생각하며 만드는 사람이 있다.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일 년, 삼 년, 십 년이 흐르면 이러한 마음가짐의 차이는 완전히 다른 질량의 두 사람을 만들어낸다.
그런 인식의 전환이 있으면 가장 먼저 이 룸에 입실할 손님의 정보를 찾아보게 된다. 얼굴, 성함, 국적, 지역, 취향, 체크인 예정 시간 등 미리 데이터를 알고 룸을 점검하게 되면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면서 평소와 다른 시도를 해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를 좋아하는 손님이라고 하신다.
– 물을 추가로 더 배치해두자.
일본에서 오시는 손님이라고 한다.
-룸 태블릿 언어를 미리 일본어로 바꿔두자.
저녁에 체크인 하신다고 한다.
-미리 턴다운 서비스 (손님의 편안한 수면을 위해 호텔에서 손님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를 끝내놓자
혹여 이런 취향 데이터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손님이라도, 최소 얼굴과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룸을 점검하다 보면 점검하다가 너무 귀찮아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가끔 그 손님 얼굴을 떠올리면서 힘을 내게 되는데, 아무리 만나본 적 없는 손님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룸을 단순한 점검 대상으로 보는가, 혹은 그 분이 머물다 가실 룸으로 보는가의 차이가 같은 반복작업을 하더라도 나에게 다른 마음가짐과 동기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자로 생각할 때는 혼자 텅 빈 방을 점검하다가도 가끔 그 손님이 침실을, 화장실을, 거실을 왔다갔다 하시는 장면이 그려지곤 하는데, 그러면 어디 어디에 손님 시선이 닿을지, 혹여나 내가 귀찮아서 넘긴 곳에 문제라도 있어서 실망하시지 않을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며, 가끔 너무 쉬고 싶을 때도 혼잣말로
“아이고 힘들다. 그래도 해놓을게요 Mr.ooo 님”
하고 움직이게 되기도 했다.
또한 손님이 체크인하시는 날 마침 내가 점검한 룸의 손님의 그리팅(웰컴)까지 내가 맡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그 분을 생각하면서 담았던 마음은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하여 실제 그 손님을 맞이할 때 좀 더 진심을 담은 서비스를 할 수가 있었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애착이 가는 손님들이 있다. 룸 준비과정 부터 성의를 담았던 손님에게는 당연히 실제 서비스에서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진다.
내가 실제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경우에는 손님들이 경계가 풀리면서 서비스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늘어난다. 마음이 열리니, 에스코트하는 시간이나 웰컴티 드리는 시간에도 불편한 침묵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해서 손님이 떠나시면서 좋은 코멘트를 주시면 나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기분이 좋았고 그 좋은 기분은 늘 좋은 에너지로 변해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니까.
한 번은 손님을 그리팅 하면서 엘레베이터에서 먼저 질문을 청했다.
“지난 번에 묵으셨던 룸도 이번이랑 같은 구조였는데, 야경이 보이는 룸을 좋아하시나요?”
“지난 번엔 너무 바쁘셔서 새벽이 다 되어서야 식사하셨는데, 오늘은 식사하고 오셨나요?”
그 순간 바닥만 보고 침묵하고 계시던 손님이 갑자기 살짝 놀란 얼굴로 나를 한 번 쳐다보시며
“야경이 보이는 룸을 좋아해요. 오늘은 곧 저녁 약속이 있어요.” 라고 대답을 하시면서,
“저번에 늦은 새벽에 나한테 룸서비스를 서빙해줬던 그 사람이죠?” 라며 그 때 먹은 메뉴, 그 때 나눈 대화까지 그 분도 나를 기억하시는 것이다.
누군지 기억하면서도 어차피 다분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침묵하셨던 손님에게 작은 성의가 마음을 열게 하고, 서로가 서로를 기억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둘다 놀랐다.
손님은 내가 주방에서 웰컴티를 타는 동안에도 곁에 서성이시며 그동안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었던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셨다. 좋아하는 차(茶) 취향, 한국 여행 중 어디가 제일 좋았고 무슨 음식이 제일 맛있었는지, 지금 취득한 국적은 사실 진짜 태어난 곳이 아니라는 것까지.
그리고 다음에 이 분의 지인에게 서비스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 얘기를 이미 들으셨다며 그 분이 나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하시더라고 따봉 포즈를 취해주시면서 나에게 격려를 해주시는 것이다.
나도 그제서야 앞으로 그 손님이 오시면 야경있는 룸을 배정해드리면 좋다는 점, 차를 대접해드리면 좋겠다는 점, 그 분께는 지금 국적의 언어가 아니라 태어난 고향에서 쓰는 언어를 써드려야 좋아하신다는 점 등 몰랐던 정보들을 알게 되었고, 호텔 데이터 베이스에 추가하여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했다.
내가 이렇게 쓰고 나니 무슨 서비스업의 대가 처럼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내가 가장 최상의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어느 날 일어났던 놀라운 사건을 정리한 것이지 평소에 내가 점검한 모든 룸의 손님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큰 일의 질량은 작은 일에 대한 최선이 모여 일어나는 것이라는 배움을 공유하고 싶었다.
내 이런 면은 완벽주의에서 비롯되어 같은 서비스 퀄리티를 유지하지 못할 때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다. 점검한 룸에 꼬투리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고집, 융통성 있게 체력과 감정을 관리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피로감을 생각한다면… 지금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근본적 실력이 아닌 친절로서 사람들을 웃게하고 싶은 욕심엔 늘 소진이 따랐으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인 걸 들키기 싫어 도무지 웃을 기분이 아니었던 많은 순간에 그 손님들로부터 도망쳐 숨었으니까.
어쨌든 룸 인스펙션 시간은 바쁜 일정 속에서 잠시 멈춰 근본을 생각하게 했다. 손님에 대해 그려보고, 또 꼭 그 손님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날 하루를 돌아보며 내 공부를 기록하고 적당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장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