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달력을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3주 전 일정이 어떤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흘러갔다.

빠른 삶의 역설은 빠르게 살수록 기억에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속도를 올리면 풍경이 흐릿해진다. 그 흐릿한 풍경들이 모여 나의 인생이 된다.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추기로 했다. 스마트폰 스크린 타임을 반으로 줄였다. 주말에는 아무 일정도 잡지 않는 날을 만들었다. 걸을 때 이어폰을 빼기 시작했다.

처음 한 달은 불안했다. 뭔가를 놓치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두 달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하루가 더 길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빠름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속도로 살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